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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확장)글로벌 중전기시장 '한류열풍' 불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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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지원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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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3 10: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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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8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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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1조달러 달성)
36년간 일제에 의해 국토가 유린됐던 나약한 나라, 동족간 상잔이라는 비극적인 전쟁을 3년이나 치러야 했던 불행한 나라,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세계 최하위 경제권에 위치한 나라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된 지 불과 50년 만에 세계 경제규모 10~15위권을 유지하는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풍부한 자원’ 대신 ‘열정적인 무역활동’을 통해 경제강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역사적인 ‘무역규모 1조달러 돌파’와 ‘중전기 수출 100억달러 달성’은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건국 63년만 이룬 성과
지난 12월 5일 오후 3시30분,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돌파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9대 무역국가로 당당히 올라섰다. 무역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선 곳은 미국과 중국(3조달러), 독일(2조달러),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와 이번에 새로 진입한 한국까지 포함해 9개국에 불과하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 63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된 1962년 이후 50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특히 1962년 당시 우리나라 무역액이 4억8000만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세기만에 무려 2000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였다는 뜻이다.
이같은 성장세에 큰 기여를 한 산업으로는 시대별로 가발, 섬유·의류, 전자기기, 자동차, 반도체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원천기술 부재로 인해 오랜 세월 해외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중전기 산업도 끊임없는 국산화 노력과 신기술 개발로 제 몫을 다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중전기 수출 100억달러 돌파’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重電강국의 꿈 ‘한발 앞으로’
우리나라의 중전기 수출은 1963년 국제전선이 국내 최초의 나동선인 26M/T를 베트남에 내보내면서 시작됐으며, 전기기기분야에서는 1965년 배선기구류를 금성사와 장안공업사가 나이지리아와 베트남에 수출한 것이 효시다. 이후 지속적으로 수출이 확대되면서 1978년 처음으로 중전기 수출규모가 1억달러를 넘어섰으며, 1993년 10억달러, 2006년 50억달러를 각각 돌파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5일에는 역사적인 무역 1조달러 달성과 함께 ‘중전기 수출 100억달러’ 돌파를 알렸다. 실제로 지난해 말까지 집계할 경우, 최대 115억달러까지 수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3년 수출 10억달러 달성을 기점으로 매년 두 자리수 이상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미래 전망은 더욱 밝다.
수출지역도 미국, 중국, 일본, 동남아 중심에서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으며, 품목도 단순한 조립기기에서 초고압, 첨단친환경 전력기기와 시스템으로 다양해지면서 전력기기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특히 지난해 수출 100억달러 달성은 대한민국이 꿈꾸는 ‘중전기 강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또 한 걸음 내딛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중전기 산업은 2020년 수출 500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장세창 전기산업진흥회장은 “시장 수요가 확대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해 수출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며 “특히 최근 전기연구원의 세계단락시험협의회 정회원 가입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대외적 신뢰도가 한층 좋아진 만큼 2020년 수출 500억달러 달성과 글로벌 톱 5의 선도국가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100억 달러 돌파한 중전기 수출 역사)
우리나라의 전기제품이 처음으로 수출된 것은 지난 1963년도 일이다.
국제전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나동선(26M/T)을 월남으로 수출한 것이 중전기 수출의 효시로 기록돼 있다. 당시 첫 수출액은 3000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1965년 금성사와 장안공업사가 배선기구류 5만4000달러어치를 나이지리아와 월남에 수출했으며, 1970년대 초고압 송전선로와 고리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각종 케이블을 중동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수출하기에 이른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추진되는 동안 전기업계는 외자도입을 통해 생산시설 개선과 기술향상을 도모했으며, 미국·일본 등 전력선진국 등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본격적으로 변압기, 차단기 등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년~1971년) 기간 중에는 154kV급 고압변압기와 22.3kV급 이하 주요 배전용 변압기, 차단기, 계폐기 등을 국산화했다.
이어진 3차 경제개발 계획(1972년~1976년) 이후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전기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이 기간 동안 수출성과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수출통계가 시작된 1977년 중전기수출(전선 포함)은 640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듬해인 1978년 수출 1억달러 돌파를 이뤄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중전기 업계는 시련을 맞게 된다.
당시 연간 1000억원 규모에 불과했던 중전기 내수시장을 감안, 정부가 통폐합을 실시한 것이다. 이로 인해 효성은 초고압 송변전설비를, 현대중전기는 수출과 선박용, 자체수요에 한해 초고압 설비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나머지 금성계전, 신한전기, 대명중전기는 154kV 이하 전문생산업체로 남을 수는 있었지만 내수가 아닌 수출만 허용됐다.
다행히 1986년 정부가 공업발전법을 제정, 다시 자유경쟁체제로 전환하면서 이듬해인 1987년부터 현대중전기, 이천전기, 금성계전, 신한전기, 대명전기 등 5개사에 생산과 내수 판매를 허용하고, 1989년 중전기 업계의 내수판매가 완전 자유화되면서 효성의 독점 공급체제가 해제됐다.
1990년대에는 중소기업고유업종 졸업제, 단체수의계약 폐기 등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또 1990년대 초 중소기업의 자생력 확보를 위한 지원사업으로 1120억원의 자금이 중전기산업 등에 집중 지원되는 등 중전기분야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시기를 맞았다.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이어오던 수출규모도 1993년 들어 10억달러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90년대의 급격한 기술발전은 중전기 산업의 수출산업화를 가져왔다.
IT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응용제어, 진단시스템 기술개발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한 전기 산업계는 내수 위주의 성장에서 탈피, 해외시장 비중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중동지역의 전력설비 투자 확대, 미국 전력설비 개보수 진행 등 해외시장의 여건도 이같은 중전기 업계의 변화를 이끈 주 원인이 됐다.
특히 대기업의 초고압 전기기기 수출은 중전기 산업을 수출주도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2006년 중전기 수출규모가 50억달러를 넘어선 지 불과 5년 만에 100억달러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수출확대를 위해 전 세계를 누볐던 중전기 산업 일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자료원 : 안광훈 기자 (ankh@electimes.com) : 201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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