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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베트남 진출 20년…애물단지에서 업계 톱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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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리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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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17: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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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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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구 LG전선)이 1996년 LS비나(VINA)케이블(구 LG비나케이블)을 설립,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지 20년이 지났다. LS전선은 당시 글로벌 전문기업을 꿈꾸며 야심차게 베트남 시장에 도전했다. 그때 베트남은 전쟁 이후 산업기반 복구를 위해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 예정된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미지의 땅이기도 했다.
LS전선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이처럼 기회와 리스크가 상존하던 베트남 땅을 밟았다. 하지만 막상 찾은 베트남은 상상 속에 그리던 곳이 아니었다. 처음의 기대감은 곧 실망과 위기감으로 변했고, 베트남 법인은 그룹 내에서 애물단지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LS전선은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의 베트남 법인은 베트남 최대 전선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룹 내에서도 주목받는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 LS전선 베트남 법인의 지난 20년을 돌아본다.
기대…공산화 후 최초 한국기업인단으로 베트남 방문
한국·베트남 간 수교가 이뤄지기도 전인 1989년. 공산화 이후 한국기업인단으로는 최초로 럭키금성그룹 경제사절단이 베트남을 방문했다.당시 산업기반 복구가 절실했던 베트남 정부는 사절단을 크게 환영했고, 럭키금성그룹의 진출을 간곡히 요청했다.럭키금성그룹은 이에 그룹 차원에서 베트남 진출을 적극 모색했다.
당시는 글로벌 전선 업체들이 산업 인프라의 핏줄이나 다름없는 전선·케이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뛰어들던 상황이다. LG전선도 당연히 적극적으로 진출을 준비했다.
1995년 베트남 정부의 70억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계획 발표 이후 LG전선은 현지 전선사와의 합작회사 설립을 검토했다.
대상은 하이퐁시 인민위원회 소속 휴막(HEWMAC)전선. 당시 베트남 최대 전력케이블업체였다. 협상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0월 LG전선이 50%, LG상사가 5%, 휴막이 45%의 지분을 나눠가지는 합작회사 LG비나케이블을 설립하는 합작계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LG비나케이블이 탄생했다.
실망…공장 설립부터 암초·누적적자 확대 ‘존폐 기로’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공장 설립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하이퐁의 공장부지 지반이 약해, 건설이 쉽지 않았던 것. 5m 지하에 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이 빠지면 땅이 내려앉는 곳이었다.무른 지반을 고정하기 위해 땅 아래 30m까지 내려가 파일을 박았고, 시멘트로 고정하는 등 지반 구축에만 6개월이 걸렸다. 당초 계획보다 비용 투자도 급격히 늘었다.
결국 1997년 6월에야 준공식을 치를 수 있었다.
대지 5만6000㎡, 건물면적 1만3000㎡ 규모의 공장이 탄생했고, 이곳에서는 220V부터 35kV까지 중·저압 전력케이블과 송전용 알루미늄 전선 등이 생산됐다.가동 첫해 LG비나케이블의 실적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600만달러 매출에 130만달러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손실은 해가 지날수록 커졌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친 1998년과 1999년에는 손실률이 30%를 넘어섰다.
당초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던 것과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그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심지어 경영진들이 철수까지 심각하게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외환위기와 과잉투자에 합작 파트너사의 비리문제가 겹치면서 비롯된 위기였다.존폐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LG전선의 선택은 포기가 아닌, 강력한 구조조정이었다.
희망…뼈 깎는 구조조정 ‘베트남 톱’ 도약
베트남 파트너사 부사장을 해고했다. 50%였던 LG전선의 지분도 85%로 끌어올렸다. 생산라인의 개편과 함께 보다 선진화된 인력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지 임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됐지만, 칼을 빼들었다.결과는 놀라웠다.
현지직원들이 오히려 LG전선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노사관계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사는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안정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당장 실적도 개선됐다.새출발에 성공한 LG비나는 2001년 첫 흑자를 냈다. 매출도 2001년 2300만달러에서 2005년 5400만달러, 2006년 1억달러로 급격히 늘어났다.수익성도 꾸준히 개선돼 2003년에는 누적적자를 모두 해소하고, 2006년에는 500만달러 이상의 이익을 냈다. 대성공이었다.LS전선으로 다시 태어난 LG전선은 이같은 성과에 고무돼 베트남 통신케이블 시장 진출도 꿈꾸게 됐다.
당시 UTP케이블 시장에서 고전하던 LS전선은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베트남 생산기지 확보를 적극 검토했다.베트남이 WTO에 가입했던 2006년 말, LS전선은 베트남 제2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총 투자금액은 3000만달러. LS전선은 호찌민 인근 록캉공단에 16만5000㎡의 부지를 확보, UTP케이블, 전력용 케이블 생산 공장과 R&D센터를 건립했다.
그리고 2007년 12월에는 공장이 완공되고 생산에 돌입하면서, LS전선은 북부 하이퐁과 남부 호찌민에 2개 공장을 보유한 베트남 최대 종합전선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현재 LS비나와 LSCV는 연매출 4900억원에 이르는 베트남 1위 전선회사로 성장했다.아울러 이달 22일 2개 법인의 지주회사인 LS전선아시아의 코스피 상장도 눈앞에 두고 있다.
LS전선아시아는 이번 상장을 계기로 베트남 1위를 넘어 아세안 톱 전선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명노현 LS전선아시아 대표는 “LS전선아시아는 지난해 매출 4900억원에 이르는 베트남 1위 전선업체”라며 “코스피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베트남 투자를 확대, 동남아 1위 종합전선회사로 도약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료원 : 전기신문 김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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